모든 지식은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세계를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행동의 패턴들은 구분해내고, 패턴들로부터 원리들을 추출해내고, 사물들이 가진 특징에서 유사성을 이끌어내고, 행위모형을 창출해낼 수 있으며, 효과적으로 혁신할 수 있다. 현대 화가들의 놀라운 작품들은 수동적인 보기가 아닌 적극적인 관찰의 산물이다. 재스퍼 존스가 그린 미국국기 같은 것들은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소재로 선택된 것들이다. 존스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순간 내가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잘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것을 인식한다. 보지 않아도 인식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국기를 국기로 인식한다. 하지만 어떤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 그 표면을 보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이런 점에 흥미를 느꼈다. 나의 그림 작업은 내가 익숙한 것을 어떻게 보는지를 ‘보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단순히 사물을 바라보는 지점이 아니다.” 존스의 미국국기 연작물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변형시킴으로써 그는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다시 보도록 만든다. 재스퍼 존스의 미국국기 연작들. 왼쪽:<국기> ,1954-55, 오른쪽:<세 개의 국기> 1958 작금의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재능과 관찰력이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많은 화가들은 “손이 그릴 수 없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믿고 있다. 앙리 마티스는 친구와 함께 파리의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실루엣을 몇 초 안에 그리는 연습을 하고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행인들의 몸짓과 자세에 나타나는 특징을 순간적으로 파악해야만 했다. 관찰력은 마티스의 스승인 외젠 들라크루아도 중시한 능력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목표는 뭔가를 써내려가듯 쉽게 뭔가를 그리는 것이었고 자신이 본 것을 나중에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잘 보는 능력을 갖는 것이었다. 고작 하루, 그것도 오후 나절 본 것만 가지고 완성한 고흐의 몇몇 명작을 보면 그가 원하던 능력을 성공적으로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글쓰기에도 예리한 관찰의 기술이 요구된다. 시인 에드워드 E. 커밍스는 자신을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을 관찰하는 사람으로 규정한 바 있다. 작가 존 도tm 파소스의 기억에 따르면 두 사람이 같이 산책을 할 때마다 커밍스가 종잇조각에 뭔가를 적고
Fractal Story
2010년 7월 15일
다다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