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네틱스의 창조적 생명성을 찾아” 당신은 60년대부터 ‘사이버네틱스’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즈음과 그 후의 활동에 대하여 묻고 싶다. 60년대에 예술계의 관심은 플럭서스와 퍼포먼스 등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것은 일종의 상호작용성에의 관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에 나는 학생이었고 후기인상파인 세잔에 관심이 있었다. 그의 이동하는 시점과 자연 속의 유전(流轉)과 같은 주제에 탐닉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알다시피 세잔의 구도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유전하고 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감상자측인 것이다. 또한 그 시기에 나는 F. H. 조지의 이론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는 로잔 브래트의 ‘인지(認知)’라는 발상에 근거해 신경망의 극히 초기적 구상을 바탕으로 뇌의 모델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전개했다. 이 이론은 그때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사이버네틱스라는 과학의 존재를 가르쳐 주었다. 여기서 일생에 몇 번 있을까말까 한 영감을 얻고, 예술 발전의 기초가 될 씨앗으로서의 이론적인 근거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나는 곧 알 수 있었다. 그후 나는 사이버네틱스의 모든 영역에 뛰어들어 참가와 인터액션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내가 60년대에 관심을 가졌던 사이버네틱스가 실제로는 거의 미개척 분야였던 것처럼, 바이오 텔레마틱이나 나노테크놀러지, 모이스트 미디어, 그리고 재물질화와 같은 영역은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지만, 현재의 젊은 세대가 활동하게 될 곳은 바로 이곳이라고 생각한다. 그후에 당신이 기획한 <텍스트의 주름>(1983)과 <가이아의 양상〉(1989)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그리고 당신의 아이디어는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가설’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80년대에 들어 <Terminal Consciousness>에 참여한 뒤, F. 포페르로가 기획한 <엘렉트라>에서 작품제작을 제의받았다. 프로젝트의 타이틀인 ‘텍스트의 주름’은 롤랑 바르트에서 유래한다. 즉, 바르트가 말한 ‘텍스트의 쾌락=pleasure’로부터 ‘텍스트의 주름=plissure’에 도달하게 된 것인데, 중요한 점은 내가 60년대로 되돌아가서 예술작품에 있어 감상자는 예술가와 동등한 위치를 점하며, 감상자와 작품의 상호작용만이 의미를 생성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투입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전세계에 작가를 배분하고, 전지구적인 동화를 만들어내고자 시도했다. 인터페이스에 대한
Fractal Story
2010년 4월 19일
Mond